‘황새바위 순교성지’

작성자 | 시정담당관
작성일 | 2015-06-28
조회수 | 6389




100여년 순교역사의 현장

공주에는 죄수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었던 조선시대 관찰사(후에 충청감사로 바뀜)와 감영이 있었다.

충청도 각 지방 뿐 아니라 때로는 타 지역에서 잡힌 소위 사학(천주학)죄인들이 자기 지방에서 일차적으로 심문과 고문을 받고도 배교를 하지 않았을 때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또다시 지독한 고문과 회유로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고 그래도 배교를 포기하지 않으면 감사의 명에 따라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성지 입구에 있는 예수성심상

성모상

 

 

순교자들은 참수, 교수, 옥사, 아사, 매질 등으로 죽어갔는데 공주 감영에서 교수형이 집행될 때는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 공산성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구경하였고, 참수된 머리는 나무에 매달아 천주학을 경계하게 했으며 처형된 시체는 부근 언덕에 매장하거나 그대로 밭에 두어 비가 올 때는 피와 함께 순교자들의 시체가 제민천으로 쓸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공주 감영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순교자들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으나 공식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만도 248위이며 이들 중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103위 성인품에 올랐다.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빛돌

 

공주는 100여년 동안 순교의 역사적 장소이다.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사도 등 8명이 이 시기에 참수처형 되었고, 기해박해(1839년)에는 전 베드로가 처형되었다.

또한 병인박해(1866년) 시기에는 약 1,000여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어지며, 순교의 역사는 기묘년(1879년)까지도 계속 됐다.

이렇듯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년 순교역사의 현장이다.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벽면에 새긴 무덤경단

 

황새바위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가 1980년 결성됐다.

이후 천주교단에서 황새바위 순교성지 부지를 매입했고, 1985년 순교자 248명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을 건립했다.

또, 이곳 ‘황새바위 성지’에는 십자가의 길과 명상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두 길은 언덕의 정상 광장으로 이어진다, 정상과 광장에는 한국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광장 남쪽으로 야외 미사를 볼 수 있는 경당이 있다.

이 경당 내부는 순교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앙의 제단 뒤는 삼각으로 꺾여진 투명 유리벽으로 처리되어 있고 그 중앙에 십자가가 매달린 예수상이 있다. 광장의 북쪽은 선돌 12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선돌들은 예수의 12제자를 표현한 것이다.

교탑

최근 자료조사를 통해 발굴된 순교자를 합하면 총 337명인데, 이 기록은 한국 최대의 기록이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한국의 최대 순교자 기록을 갖는 한국의 몽마르트로 비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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