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작성자 | 윤여헌 향토사학자
작성일 | 2015-05-26 01:39:26
조회수 | 4920 [kakaostory2]

9.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 운보 김기창의 ‘묵적’

한국 미술계의 거장인 운보(雲甫)가 공주 출신이라고 한다면 어안이 벙벙해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운보의 출생에 대해 일반적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 19번지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운보는 유년기부터 순탄하지 않는 삶을 보냈다. 아버지가 금강 사업에 실패해 가세가 기울고 7살 되던 해에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영원히 청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탄생지는 호적상으로 분명 1913년 2월 18일 충남 공주군 신상면 유구리 427번지에서 태어났다. 다만 출생부터 비애적 요소를 지닌 운보였기 때문에 평생 동안 고향을 숨겼다고 한다. 유구의 옛 집터는 사람들이 ‘감나무 집’으로 불렀다.

는 70세에 접어들어 청주(청원군 현동리)에 ‘운보의 집’을 완성했는데 이 곳은 그 어머니의 고향이 청주이기 때문에 택지한 것이라고 한다.

△ 운보 김기창

△ 운보 김기창

운보 김기창 화백은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한국화단의 거목이다.

운보는 승동보통학교에 입학한 7살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신경이 마비돼 후천성 귀머거리가 됐다. 그는 12살에 복학했으나 강의를 듣지 못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책에 새, 꽃, 사람, 개 등을 그렸다.

아들의 소질을 알아본 어머니는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자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하도록 주선했고 이는 그의 일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김기창의 작품은 대략 다섯 단계로, 초기의 사실적 작품을 그린 △구상미술 시기, △예수의 일생을 한국인의 모습으로 담은 신앙화 시기, △구상미술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전환기의 복덕방 연작시기, △청록 및 바보산수화 시기, 그리고 △말년의 추상미술 시기로 나눈다.

산수·인물·화조·영모·풍속 등에 능하며, 형태의 대담한 생략과 왜곡으로 추상과 구상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활달하고 힘찬 붓놀림, 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한국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만 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 얼굴을 그렸으며, 1993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하루에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을 세웠다.

△ 운보 김기창의 ‘태양을 먹은 새’

대표작으로 ‘가을(1934)’, ‘새와 여인(1963)’, ‘소와 여인(1965)’, ‘태양을 먹은 새(1968)’, ‘나비의 꿈(1968)’, ‘군마도(1970)’, ‘달밤(1978)’ 등이 있다.

5·16민족상(1986), 서울시문화상(198), 색동회상(1987)을 받았으며 주요저서로는 ‘침묵과 함께 예술과 함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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