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눈 오는 공주로의 여행

작성자 | 전체관리자
작성일 | 2015-06-30
조회수 | 11442 [kakaostor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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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면 더욱 아름다운 공산성, 공주로의 12월 여행


 

백제시대 공주의 웅진역사를 상징하는 공산성은 성벽을 따라 산책 겸 고건축을 감상하며 거닐기 안성맞춤인 여행지다. 사계절 어느 때 가도 좋다. 특히 눈이라도 오면 설경 속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 설경 속 공산성의 성벽을 거닐다 보면 만나는 문루건축물 외에도 공주 구시가지가 정겹게 다가오고 금강이 발아래 흐르는가 하면 강 너머 공주 시가지가 조망된다.
공산성 제일의 풍광은 뭐니 뭐니 해도 금강과 금철교가 조망되는 만아루의 풍광과 공북루의 풍광이다. 송산리 고분군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금서루의 풍광 또한 좋기는 마찬가지다. 금서루에 오르면 양편으로 날개인 듯 펼쳐진 성벽은 산 능선을 이용해 포곡식으로 잘 다져진 석축성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이든 외쪽이든 발길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구불구불 완만하다가도 때로는 급하게 흐르듯 이어지는 성벽 따라 걷노라면, 굳이 안내 받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진남루, 영동루, 연지와 만아루, 공북루 등 조선시대 문루건축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로 이어진다.

 

 사진1 : 공산성 외성을 걷고 있는 탐방객. 공산성 동문을 지나 성밖으로 나서서 외성 성벽 길을 따라 걸어도 내성으로 다시 이어진다.


 사진2 : 외성에서 바라본 공주 시가지. 외성 길은 공주시의 동남부에서 서남부까지 조망되어 눈 맛이 시원하다.


 사진3 : 내성 성벽. 백제 때부터 유래되어 온 공산성은 처음 토성으로 축성되었다.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진4 : 공산성 연지의 겨울풍경. 이 연못은 백제 때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연못에 이를 수 있는 암문(성벽에서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을 택하여 몰래 출입하도록 만든 작은 문)이 발굴되어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진5 : 공산성을 가자면 우선 매표소를 지나서 성으로 향해야 한다. 처음만나는 누각은 현재 공산성의 관문 금서루로 이어진다. 금서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팔작지붕의 근사한 목조 건물로 1993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이용안내

공산성은 연중무휴(설과 추석 당일 제외)로 개방된다. 입장료는 어른 1,200원(단체 1,100), 청소년 800원(단체700), 어린이 600원(단체 500),단체는 20인 이상, 경로증 소지 시 무료. 주차장 이용료는 대형, 소형 모두 무료. 문화유산해설사 해설 가능, 기타 이용문의는 공주시 관광 안내소 041-856-7700 / 840-2266

찾아가는 길
  •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 충남 공주시 웅진로 280(금성동65-3)
  • 자가용이용 : 대전-당진 고속도로 공주IC 통과 공주IC 삼거리에서 우회전, 직진하면 1.4km 전방 생명과학고교차로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좌회전 후 직진, 250m 전방 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금강철교를 건너 직진하면 목적지이다.
  • 대중교통이용 : 공주종합터미널에서 101번이나 125번 시내버스를 이용.

성벽 한 바퀴 돌면 만나는 동서남북 4개의 문

공산성은 본래 4개의 성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북루와 진남루는 예로부터 금강 건너 공산성 지나 삼남 대로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금서루는 성의 남쪽을 드나들고 지키는 문이었으며 동문은 글자 그대로 동쪽을 지키며 출입하는 문이었다.


  공산성 금서루.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근사한 목조 건물로 1993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공산성 공북루.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길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고 한다.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의 출입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진남루는 성의 남문에 해당되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조선 전기에 석성으로 고쳐지으면서 세운 문루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 4개의 문 중 영동루는 무너져 없어졌던 것을 1980년 발굴 조사하여 건물 밑부분 구조를 확인하였는데, 문터 옆 양쪽에서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된 조사결과와 철종 10년(1859)에 편찬된 「공산지」에 2층 3칸 건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복원하였다 한다.


 

금강 쪽 성벽을 따라 걷노라면 우리 고유의 건축문화유산과 어우러진 금강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공산성의 숨은 명소 만아루지

공산성에서 주변 산세와 함께 공주 시내 전경이 바라다 보이는 장소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만아루지라 불리는 이곳은 성의 영동루 밖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문을 지나 내성(內城)벽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영동루를 통과하여 성밖으로 나서면 약 20여 미터의 소나무 터널로 이어지며 소나무 터널이 끝나는 곳에 공주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만아루지(挽阿樓址)라는 누각의 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터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영동루 전경.


 만아루지. 동문밖에 자리하고 있는 이 터는 외성을 약간 낮추어 다진 후 대지로 이용하고 전면에 잘 다듬은 돌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웠다 한다.


 공주시의 구 도심이 조망되는 자리다.

성내 문화유산 둘러보기

공산성은 토성으로 축성된 백제의 성이다. 조선시대 전기에 석성으로 고쳐 성을 계속 사용하여 백제시대와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이 성의 곳곳에 혼재되어 있다. 금서루에서 성벽에 오르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서면, 백제 웅진의 추정왕궁지와 조선 인조의 일화가 전해지는 쌍수정을 만날 수 있으며 백제 웅진의 임류각, 광복을 기념하며 누각의 이름을 지었다는 조선시대의 누각 광복루 등 유서 깊은 문화유산 또한 만날 수 있다. 금서루를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추정왕궁지로 이어진다.


 공산성 추정왕궁지 전경


 공산성 쌍수정. 추정왕궁지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임류각 전경.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푼 누각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8·15해방을 기리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이라 불렀는데, 1946년에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성 연지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누각이 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세워져있다. 금강이 아름답게 조망되는 자리다.


  영은사는 19세기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탑 재료가 고려 초기의 유물이므로 그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설에는 조선 세조 4년(1458) 세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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