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사람

작성자 | 나태주 (시인)
작성일 | 2015-05-26 01:39:26
조회수 | 2998 [kakaostory2]

초등학교 교장으로 승진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함께 교장으로 승진한 사범학교 선배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의례적인 안부 전화인 줄 알고 무심코 받고 보니 용건이 있는 전화였다.

“나 교장, 교장으로 발령되었으니 우리 모임에 들어와야지. 그래서 안내해 주려고 전화했네.

“무슨 모임인가요?”

“응, 공주 시내 교장 모임이야. 그런데 이 모임엔 몇 가지 자격 조건이 있어.”

“뭔데요?”

“그게 말야 공주하고 관계있어. 우리 모임은 교장들 모임은 모임인데 공주에서 태어나고 공주에서 초등학교 나와서 공주에서 교장 노릇 하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모임이야.”

“그런가요? 그럼 전 안 되겠는데요.”

“왜?”

“전 공주가 아니라 서천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도 서천에서 다녔거든요.”

“그런가? 그럼 나 교장은 안 되겠네.”

얘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더 이상 진행시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한 모임에 들어오라고 했다가 자격이 안 되니 그만두라는 선배의 전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그게 공주 사람들이었다. 공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공주 사람들은 뿌리가 깊다. 흔들리지 않는다. 외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무리 오래 공주에 와서 머물러 살아도 공주 사람들은 그를 선선히 공주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 ‘서천 사람이 공주에 와서 오래 머물러 산다’고 말할 따름이다. 우리 집 식구 네 사람을 기준으로 말해 본다면 아내와 나는 서천 사람이고 부여 사람일 따름이다. 완벽한 공주 사람은 딸아이 한 사람뿐이다. 아들아이는 네 살 때 공주로 와 공주의 초등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태어난 곳이 서천이고 서천에서 주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사람이다.

공주 사람이 되기는 참 어렵다. 내가 선배 교장이 제시한 바와 같이 완벽하게 공주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 세상의 목숨이 다한 뒤 공주 사람을 아버지, 어머니로 택해 다시 태어나고 그런 뒤에도 공주에서 자라 공주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오는 도리밖에는 없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고 공주를 열심히 사랑하는 공주에 더욱 오래 살면서 반만이라도 공주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다.

‘한국의 시인 나태주’이기도 하지만 ‘공주 시인 나태주’로 불리고 싶은 게 또 하나의 조그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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