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거든 배가 익거든 오시오 - 통천포

작성자 | 나태주(시인)
작성일 | 2015-05-26 01:39:26
조회수 | 6729 [kakaostory2]

꽃이 피거든 배가 익거든 오시오 통천포

공주에서 유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연미산을 넘어서 우성들이 나오고 우성들이 끝나면서 사곡면과 맞닿은 지역에 통천포란 곳이 있다. 통천포? 육지 가운데 왜 포구 포자 들어간 지명이 생겼을까? 아마도 옛날에 그 자리에 보가 있었던가 보다. 그 보가 변하여 오늘의 로 발음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앞에 통천이란 말이 붙었을까? 알려진 바로는 그 개울 부근에 구리는 캐는 광산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그곳 지명을 한자로 받아 적을 때 구리가 나오는 개울, 즉 구리 동자와 개울 천자로 표기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그것이 세월과 함께 변하여 오늘의 통천포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통천포는 유구천이 금강을 바라보고 흘러가다가 한 굽이 휘돌아 가는 지점이다. 그냥 그 일대의 땅을 통천포라고 부른다. 지나다 보면 그 부근의 자연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나지막한 산과 개울이 어우러진 모습이며 개울 안쪽으로 형성된 삼각형의 땅안에 드문드문 박힌 집이며 과수원이 고즈넉한 그림을 보여 준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문득 내려 거기 머무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통천포 과수원의 주종은 사과나무와 배나무이다. 가을에 이곳에서 나는 배가 유독 맛이 달고 시원해서 사람들이 널리 찾고 있다. 게다가 늦은 봄에 피어나는 배꽃이 참으로 장관이다. 널따란 과수원이 온통 새하얀 옷감을 풀어 널은 듯싶고 나무마다 새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수줍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부의 자태 바로 그것이다. 참 좋다. 참 좋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 건 나처럼 감상벽이 심한 인간만은 아니리라.

통천포에는 음식점도 몇 군데 있다. 그 중의 한 음식점에서 배꽃이 피는 계절에 몇 차례 만났던 사람이 있다. 불현듯 바람처럼 찾아와 나를 흔들고 간 사람. 떠난 뒤에도 오래오래 가슴에 남았다.더욱이 통천포 옆을 스칠 때는 그 기억이 아린 느낌을 주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부실 때, 과일이 익어 주렁주렁 가을볕에 알몸을 선보일 때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추억이나 느낌도 많이 탈색되어 내 것이 아닌 듯 멀어져 버렸다.

그는 나한테 다녀간 뒤에 한두 차례 정다운 편지를 보내 주었고 나는 그런 느낌들을 몇 편의 시로 남겼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자취는 무엇이고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몇 문장의 편지와 한두 편의 시가 고작이 아니겠는가. 오늘에 이르러 나의 소회소회가 참말로 그렇다.

봄 먼지바람도 자고

그 흐드러진 복숭아꽃 배꽃

사과꽃들도 지고

나무 잎새들만 우거져

사람들을 부르고 있습디여

잎사귀 사이 언뜻언뜻

맑은 물 고운 모래

물새 쓸쓸한 목울음만 먼저 와

객지 사람을 손짓하고

있습디여

초여름의 통천포

스치는 길목.

-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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